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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성 치매를 앓고 있는 아빠를 돌보게 된 20대 초반의 저자가 자신의 체험과 돌봄에 대한 생각을 써내려간 책.

20대 초반, 미래를 위한 준비만으로도,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마땅한 청년이 아버지의 간병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 고생과 외로움과 피로가 눈에 선한데, 충분히 신파로 흘러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과 감정,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담담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써내려갑니다. 그 덕분인지, 우려했던 것보다 마음이 그렇게 무겁고 힘들진 않았습니다.

저자는 그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사회적 돌봄에 대한 사유와 학습을 진행하고, 심지어는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과 자조모임을 조직하고자 동분서주합니다. 그 와중에 책까지 썼죠. 그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였다면, 다른 건 다 제치고 간병 하나만으로도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웠을텐데 말입니다. 제 아버지의 경우엔 돌아가시기 전까지 뭐 병원 신세를 몇차례 지시긴 했습니다만, 저자의 경우처럼 치매나 알코올 중독과 같은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고, 다만 병원을 너무 싫어하셔서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 좀 힘들었을 뿐입니다. 제겐 누나도 한 명 있구요. 그런데도 그 상황만으로 전 때로, 돌겠더라구요. --;;

저자는 그 많은 일들을 헤쳐가며 이렇게 훌륭한 책까지 써냈습니다. 저런 사람은 뭔가... 음... 나랑은 종이 다르구나, 생각이 들 정도랄까요. 그런 탓인지, 공감할 수 있는 여지는 좀 적어졌던 것도 같습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나랑 비슷한 고통을 겪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웬지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 저 멀리서 하는 얘기를 듣는 것도 같았구요. 물론 책 자체를 신파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더 큰 몫을 했겠지만요.

어쨌거나, 저자가 누누히 얘기하는 사회적 돌봄,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는 누군가의 희생 같은 얘기들은 십분 공감이 되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중요한 얘기가 되겠지요. 대가족 단위로 살며 동네 어귀 논밭이 노동의 현장이던 시대와 현대의 돌봄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돌봄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효라는 이름으로, 때론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이 되고, 때론 죄책감이 되어야 할까요.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주었으면 합니다. 장기요양보험 같은 제도도 있고, 부양의무자 조항도 폐지된다고 하고, 간병인 없는 병실도 생겨나고 있고... 여러 부분에서 개선이 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그 집안 식구들의 삶의 질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얘기가 제 주변에서만도 너무 많이 들립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요구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결국 늙고, 병들고, 죽을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저도, 제 주변 사람들도 모두 존엄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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