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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첫 부분, 아다마 함장이 던졌던 질문. 정확한 말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인간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종족인가?'

장장 네 개의 시즌에, 중간에 나온 Razor 에피들에, 추후 방영될 카프리카 파일럿 에피까지,
백 개가 넘는 에피들을 너무 재밌게 봤었지만,
정작 처음 아다마 함장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드라마 안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다 죽고 사일런(극중 사이보그의 명칭)들이 살아 남는다 해도, 아니 사일런까지 다 죽는다 해도,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종족이 전멸한다는 것과,
나 하나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단 말인가?
종족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을 뛰어 넘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 체감이 되지 않더라.
워낙 개인주의적 인간이 되어버린지라. --;;

드라마는, 결국 뭐... 모든 것이 God's plan이었다는... 식으로,
어마어마하게 뿌려대었던 떡밥들을 아사무사 마무리 짓지만,
God은 왜 그런 plan을 가졌던 건지,
왜 인간은 그 모오든 간난고초를 극복하며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종족인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는 거다.
우주의 유지와 운용에 무슨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 생물의 진화에 큰 모범이 되는 것도 아니고...
Matrix에서 Smith 요원이 했던 말처럼, 인간은
차라리 생태계에서 암Cancer과 같은 존재에 더 가까운 쪽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오늘 마지막 장을 덮은 <다윈의 식탁>에서 재밌는 내용을 봤다.
인간이나 동물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기가
여태까지는 참 녹녹치 않았었는데,
이기적 유전자론에 의하면 그럴싸하게 설명이 되더라는 거다.
어떤 개체라도 생물학적으로 기본적인 생존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종종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초개같이 던지는 인간의 행동,
생식능력을 포기하고 평생을 고된 노동에 헌신하는 일개미들...
개체의 입장에서 이런 이타적 희생은 말이 안되는 것들이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일뿐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책략일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결국은
유전자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취하는 책략이라는 거다.
개체는 다만 유전자를 실어나르는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것.
언뜻,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다!라는 불편한 주장으로 들릴 수 있는 이 이기적 유전자론은
이미 70년대에 나와 진화생물학자들 뿐 아니라 인문학자,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단다.
(근데 왜 난 이제서야 알게 된거야. --;;)

음... 글이 점점 길어지네.

암튼, 배틀스타 갤럭티카로 다시 돌아오면,
종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갖은 개고생을 다 하던 인간들의 노력이,
뭐, 인간이라는 종족이 특별히 살아 남아야 할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유전자가 시키니까'라는 말로 거칠게 요약될 수 있더라는 거다.

.......

이렇게 허무하고도 간결한 결론을 내리고 나니, 참...
맥빠지더라.
고작 유전자라니.

........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도킨스는,
책 마지막에 그런 말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독재에 항거할 수 있다"
나같이 맥빠져하는 독자들을 위해 남겨놓으신 말인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저 유전자의 요구에 순응해 살지만은 않는, 고도의 의식적 존재라는 걸 십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뭘 위해 유전자의 독재에 항거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의식을 총동원하여 유전자의 지시에 맞서 싸우는 삶은, 행복할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이라는... 그런 기준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독재자의 항거에 맞선 투사의 삶은, 
경외스럽긴 하지만... 너무 고되 보이지 않는가.

눈만 마주치면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쏟아내는 울엄마는,
결국 유전자의 자기 복제 욕망을 대변하는 대변인이고,
난 그 유전자에 맞서 싸우는 투사란 말인가.
무엇때문에?
왜?

나는(엄밀히 말하면 내 유전자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유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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