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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것들/드라마

Bye, West Wing!

걷자웃자 2009. 2. 12. 19:36

머나먼 여정이었다. ㅋ

대체 몇 년 전에 보기 시작해서 이제야 끝난 건지 기억도 다 안 날 지경이지만,
1,2 시즌은 '세상에 이런 멋진 드라마가 다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으로 삽시간에 봐버렸고,
3,4,5 시즌은 초반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 덜해지는 가운데,
그만 볼까... 하면 또 마음을 빼앗기는 주옥같은 에피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끊지 못하고,
6시즌부터는 에이, 이제 다 와가는데 끝을 보자는 심정이다가,
마지막 7시즌에는 역사적인 라이브 에피가 혀를 내두르게 만들더니,
리오의 죽음부터는... 음... 눈물없이는 볼 수 없던..

이렇게 잘 짜여진 이야기, 잘 짜여진 인물들과 이별하는 것은,
실세계에서의 이별만큼이나, 아프고 힘들더라.
이야기의 힘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웨스트윙은 민주당 정권의 이야기였다.
(난 물론 공화당 보다야 민주당을 더 좋아하지만, 그래도 중간 시즌 두어 개쯤은
공화당 정권의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웬걸, 선거하는 족족 민주당이 이기기만 하더라. ㅋ)
미국 내 양당 구조가 아무리 뿌리 깊다 할지라도,
그렇게 대놓고 민주당 만세, 하는 드라마를 만든 그들의 배포가 놀라웠다.
하긴, 미국에서는 신문들도 다 대놓고 지지후보 발표한다니까... 뭐.

우리나라에서 정치 드라마를 만들면-
제 * 공화국 류의 정치 후일담이 되거나,
정치인들이 연애하는 드라마가 되거나ㅋ, 하기 십상일거다.
그래서, 정치 드라마는, 아주 나중에,
내가 뭘 쓴대도 아무도 뭐라하지 못하게 되는 먼 훗날에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웬지 그러다간 평생 못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눈꼽만큼이라도 젊은 혈기(?)를 가진 지금 해봐야 하는 건 아닌지.

그나저나 언론은 무조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신화, 그건 언제 깨지려나.

+++

얼마 전 한 친구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언제나 우리의 기를 죽이곤 하는 헐리웃 이야기꾼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생산 능력에 대해서,
나으 전망은 그래도 장미빛이었다.
무슨 수백억 달러가 투입된 첨단과학의 연구성과를 하루 아침에 따라잡자는 것도 아니고,
신체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어 100미터 달리기에서 당장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자는 건데,
- 좀 거칠게 말하자면 - 못 따라잡을 건 또 뭐냐는게 나으 주장이었다.
그 친구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쳤다.
첨단과학을 따라잡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오히려 이야기의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 훨씬 더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다.
이야기는 그 모오든 것 위에 발딛고 선 존재라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말이다.

'이야기라는 걸, 가요톱텐 순위 매기듯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 아니니?
어느 집단의 이야기건 다 그 집단의 역사성과 사회적 특수성이 있는 건데 말이야'
라고 젠 체를 하려다 그냥 삼키고 말았었는데,
웨스트윙을 다 보고 난 나의 생각은....
솔직히 말하면.....
글쎄, 모르겠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웨스트윙같은 명작을,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뒷골목의 마약딜러부터 세계 최고의 권력자까지 샅샅이 이야기로 엮어내고야 마는 그들을,
우리가 따라갈 수 있을까?
라는 의기소침?

........

보편성이니, 거대자본이니, 상대주의니, 사대주의니, 다양성이니 하는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머리 속을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뭐라 결론을 내야할지 모르겠지만...

음......

자,자,자, 되두않는 거대담론일랑 집어치우고, '나'에 관해 말하자면
문제는 사실 간단하다.
다양성이고 나발이고, 하나라도 깊이 파자는 것.
웨스트윙이 보여준 깊이와 천착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나왔을 거라는 게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열심히 쓰자는 말이다. (이런! --;;)

백년만에 포스팅하는 건데, 웬지 정신 없는 글이 되어버렸네.
작년 말, 프로젝트 좌절 후 생긴 글쓰기 포비아의 한 증상. --;;

그러게, 매일매일 꾸준히 써야지, 응?



암튼,  
그들이 매우, 그립다.


굿바이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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