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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달쯤 됐을까요. 당치도 않은 벽에 고집스레 티비를 달았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떼냈더니 손가락만한 구멍이 네 개나 흉하게 보였드랬죠. 이 구멍들을 어떻게 가리나, 출발은 여기였습니다. 화분을 몇 개 사다가 이 구멍들을 가리리라. 때마침 이케아에 갈 일이 있어 실내용 화분 세 개에 식물 세 개를 사다 잘 심어주었습니다.

두 달 동안 별 탈 없이 잘 크나... 했더니

화분 2개 흙에 이런 하얀 가루 같은 게 보이기 시작. 뭔가 싶었지만, 뭐 식물에 별 탈 없어보이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죠. 블루베리나 포도 같은 과일에도 당분이 흰 가루처럼 붙어 있기도 하잖아요? ㅋ 그런데, 잠깐 들르러 왔던 누나가 보더니, 곰팡이라는 겁니다. --;; 역시 물구멍이 없는 이케아 실내용 화분은 저같은 초보에게 무리였던 걸까요. 물구멍없는 화분을 위한 썪지 않는 흙까지 사다 넣어줬건만. ㅜㅜ

어쨌거나 당장 해 잘드는 베란다에 화분을 내놓고 검색해 보니 소독용 에탄올을 사다가 물과 10대 1 비율로 희석해서 뿌려주면 곰팡이가 사라진다는 다수의 글 발견.

 

얼른 사다 뿌려야지, 마음 먹은지 장장 3일이나 지난 오늘, 겨우 약국에 들러 1,500원을 주고 소독용 에탄올을 사왔습니다. 생수병에 물과 10대 1 비율로 넣고 섞은 다음 스프레이통에 담고 칙칙-

당장은 모르겠어요. 말라봐야 이게 사라졌는지 어쩐지 알 것 같은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애가 어째 맛이 갔네. --;;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저 안쪽 가지들이 다 말라 죽어가고 있............

곱게 실내에서만 기르다가 갑자기 베란다에 내놔서 그랬나. 이케아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이 아이는 'CUPRESSUS MACROCARPA 쿠프레수스 마크로카르파'라는 읽기도 어려운 이름인데,

충격적이게도 우리집 아이와는 달리 이렇게나 예쁜 아이였습니다. --;;

어쨌거나 관리방법을 보니 '직사광선을 피해 밝은 장소에 두세요'라고 되어 있는데, 이걸 정남향 베란다에 며칠 그냥 놔둬서 이렇게 된건가... 싶기도 하고... 
네이버에 찾아보니 이게 또 우리나라에서는 '율마'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빛을 굉장히 좋아하는' 식물이라나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원.

어쨌거나 갈변한 가지들은 다 잘라주는 게 대세인 듯 해서 과감히 전지가위를 찾아들고 평생 처음으로 병든 가지들을 잘라내 봤습니다. 

자르다보니 이만큼이나.........

결국 우리의 율마양은 이렇게 헐벗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건, 사진에서 보이듯이 저 메인 줄기도 갈색인데, 이것도 갈변된 건지, 그렇다면 저 메인 줄기마저 뭉텅 잘라내야 하는 건지... 저것마저 잘라내면 그야말로 뿌리만 남는 건데, 그럴 바엔 깨끗이 이 아이를 보내주는 것이 피차 좋은 일이 아닐지...

....................

어쨌거나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으니, 오늘 밤은 일단 메인 줄기는 원래 저런 나무색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사태를 마무리 하기로 합니다. 일단 물을 듬뿍 주고, 무럭무럭 빨리 자라는 아이라니 하루속히 예전의 그 풍성했던 자태를 갖추길 바래봅니다.

미안합니다, 율마양-

그나저나 오늘 보니 우리 집에 굉장히 앤틱한 전지가위가 있더군요.

잘리기는 드럽게 안잘리던데, 예뻐서 한 번 찍어봤습니다.

예쁘니 이 아이는 버리지 말고, 다이소에 가서 싸고 잘드는 전지가위 하나 사와야겠어요.

무슨 짓을 해도 역시 소비행위에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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