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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비자

걷자웃자 2006. 1. 27. 18:47

오늘 아침, 미국 비자 인터뷰가 있었다.

직장도 꽤 자주 옮기고, 중간에 어설프게 학교도 1년 다니고, 그렇다고 통장에 거액의 잔고가 있지도 않은 나는, 미국비자가 reject 당할 수도 있다는 여행사의 우려에 지난 일주일간 정말 최선을 다해 서류 준비를 했었다.

지방세 과세 증명서에 작년치 재산세를 안냈다는 표시를 지우려고 4번이나 종로구청을 왔다갔다하고, 1년간의 학교 생활을 증명하기 위해 후배를 시켜 성적증명서까지 떼어오게 하고, 몇개월 되지도 않는 엠파스의 경력과 원천징수를 증명하기 위해 예전 인사과 직원을 괴롭히고, 혹시나 우리의 비자관 직원님께서 혼란스러우실까봐 되두않는 영작 실력으로 자기소개 요약판을 만들어가고, 난 정말, 미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을거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그런데 정작 오늘 아침 혀짧은 소리로 우리말을 하시던 대사관 직원님께서 보아주신 것은, 달랑 명함과 월급통장, 그 두개 뿐이었다. --;;

"삼성에 다닌지 얼마나 됐어요?"
"작년 7월부터 다녔는데요."
"택배로 여권이랑 비자 보내드리겠습니다."

......

"가...감사합니다"

내가 일주일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15장여의 문서와 비굴한 자기소개문서가 들춰지지도 않은채 내게 돌아오는 동안, 그 위에 올라앉은 푸른 색의 삼성로고는 차가운 비웃음을 날리는듯 했다.

'거봐. 너는 내가 증명하는 것의 100분의 1도 스스로 증명할 수 없잖아?'

혹자는 이런 순간에, 이리 다 알아서 보호해 주시는 삼성의 어머니같은 품에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다소... 초라, 자괴, 허무했다. --;;

삼성은 이렇게 생활 깊은 곳에서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

근데 그 대사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삼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그렇게 일사천리였을까?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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