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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오대산을 너무 힘겹게 넘고

걷자웃자 2003. 7. 19. 21:53

스물네째날(2003.07.19.토)


2박3일간 성수가 다녀가고, 성수가 왔을 때 시작한 오대산 행은 오늘 저녁에서야 끝이 났다. 길고, 두렵고, 힘들었던, 그러나 나중에 생각날 것도 많았던 산행이었다.


첫날, 1시경 성수와 오대한 입구에서 조우. 여기까지 찾아와준 성수에게 고마워하다. 성수가 진부에서 사온 김밥으로 점심. 월정사 근처 계곡에 앉아.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약 8km 정도의 길은 매우 완만하고, 주변에 전나무, 잣나무 숲이 우거지고, 계곡까지 흐르고 있어 걷기 너무 좋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근데, 여기저기 공사판이고, 차가 상원사까지 드나들도록 되어 있어 번잡스러웠음. 관리공단, 정책을 수정했으면...... 핸드폰이나 잘 터지게 해주지 말이야. 차가 다녀서 그런지 걷는 사람이 성수와 나 둘뿐이었음. 중간에 계곡에 발도 담그고, 상쾌한 산책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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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서 성수와]


상원사에 와서 적멸보궁까지 오르니 대략 6시경.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신도들만 잘 수 있다는 원칙을 깨고 우리도 받아줌. 드뎌 절에서 자보는구나 했음. 저녁, 새벽예불에 참가하라는 스님의 명. 그러나 명을 깨고, 비로봉에 오르기 시작. 성수의 다리 근육이 말을 안듣기 시작. 그래도 끝까지 오름. 비로봉은 1560여 m 되는 고봉. 날씨가 잔뜩 흐려서 정상에서는 구름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기쁨에 기념촬영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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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정상 비로봉에서]


시간이 늦어 서둘러 내려왔으나 보궁까지 오니 날이 저물어 깜깜. 겨우 숙소로 와서 9시부터 잠자리에 듬. 잠이 올리가 없다. 옆자리 아저씨는 기침에 혼자말, 들락날락... 도보여행 20여일만에 난 아무데서나 자는 데 익숙해 졌다고 믿었으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특히나 절같은 위압적인 곳에서는 아니었음. 결국 뒤척이며 밤을 새다가 2시반경, 새벽 예불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상. 안가려고 죽은 척하고 있었으나 우리 방앞에서 목탁을 두드리시는 스님. 정말 징했다. -.-;; 3시반경 예불 참석. 계속 절을 해야하는 어려운 예식인 줄 알았는데, 그냥 서있는 시간도 많고 앉아있는 시간도 많은 할만한 것이었음. 나중엔 도취해서 소원을 빌기까지 함. 신앙심없이 문화체험 차원의 것이었으니 하느님도 이해해 주시길... ^^;;
암튼 그런데, 불교 예불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불경들로 꽉 채워져 있음. 이 불경들을 모두 외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했지만, 의미를 알고 있는 이 몇이나 될까 무지 궁금했음. 나중에 성수왈, 인도어를 한자로 음역만 한 것이라고 함.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와는 멀고도 먼... 꼭 그렇게 해야하나?
예불을 마치고 좀 쉬다 절밥으로 아침식사. 공양한다고 하더군. 예상외로 맛있는 김치찌개가 나와 맛나게 뚝딱.


7시 좀 넘어서 내려오기 시작. 8시경 상원사 도착해서 북대사 쪽으로 등반시작. 상원사 지나면 계곡같은거 따라 내려가는 길인 줄 알았더니 북대사까지 약 5km는 계속 빙빙도는 오르막. 본격적인 산행로였음. 성수는 다리가 아파서 너무 힘들어 하고, 비는 계속 쏟아지고, 길가엔 위험지역이라는 표지판이 계속 따라다녔음. 오대산, 지리산을 닮은 산이라고, 유장하고 장엄한 산이라고 들었으나, 그 때 우리에겐 공포 그 자체였음. 결국 북대사를 2km 정도 남겨두고 후퇴. 내려오는 길에 보궁에서 만난, 우리와 같은 여행객 2명의 여자애들을 만남. 그 애들은 아마도 새벽예불을 안하고 계속 자다가 늦게 내려온듯. 그런 배포가 부러움. 나와 같이 한비야의 책을 읽고 움직이는듯 함. 암튼, 오대산이 오늘은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진부로 퇴각. 여관잡고, 젖은 빨래는 세탁소에 맡기고, 몸도 닦고, 상쾌한 상태에서 삼겹살에 소주. 성수는 나보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일을 하라고 함. 실은 나도 그럴 생각이지만, 자신있게 얘기 못했음. 시간을 좀 더 두고 생각하기로 맘먹음. 낮 술에 얼큰해져서 여관방에서 자다 깨서 TV보고 밥먹고 TV보다 다시 잠듬. 담날(오늘, 11일) 11시까지 내쳐 잠. 너무 늦게 일어났지만 너무 푹, 잘 잤음. 점심식사 후 성수는 울산으로, 난 다시 오대산으로. 상원사에 3시 도착.


위험하다는 관리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입산. 역시나, 늦은 시간 때문에, 더 무서웠음. 그 좋다는 오대산의 풍광을 공포 속에 달음질 쳐 겨우 7시쯤 명개리에 도착. 산에 오르려면, 정말 인간 하나의 힘이란 건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받아들여야 함. 그래서 부지런하고 겸손해야 산이 주는 선물을 잘 받을 수 있음. 겸손, 겸손해야 함. 잘난 체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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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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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을 넘으며]
오른쪽, 차가 다니는 길을 내느라 산 중턱을 보기 흉하게 파놨다.
이 길 때문에, 작년에 수해를 심하게 입었단다.


헉헉....
오대산...
산세는 전혀 험하지 않은 푸근한 산이었으나,
배울게 많았던(?)
산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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