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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제천까지

걷자웃자 2003. 7. 10. 21:39

열일곱번째날(2003.07.10.목)


 

- 강원도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밤이다.
82번 국도를 따라 제천까지 왔다. 물태리부터 구룡까지는 충주호와 숨바꼭질 하며 가는 시원한 길이었다. 코를 열고 숨을 쉬면 꽃집 화분에서나 맡을 수 있는 허브냄새, 들꽃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상쾌한 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풍면 물태리 근처에서 내려다 본 충주호]
날이 흐려서 그 푸른 색이 잘 안나왔으나, 흐린대로 장관이었음.


- 일정을 자꾸 빡빡하게 짜버릇했더니, 길가며 여유있게 이것저것 둘러보며 선선히 도보하지 못하고, 쫓기는 사람마냥 걸어다니게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라는 도착지점에만 연연해서 주위에 어떤 사람이 스쳐가고 있는지, 이 마을은 어떤 사연을 가진 마을인지 모른채 그냥 시계랑 지도, 그 숫자와 방향만 쳐다보면서 가는 것. 중간에 뭐가 있는지 돌아보고 짚어보며 느끼며 가는게 속도만 느리게 할뿐이라고 생각했던게 내가 살아온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일이라곤 소위 일류대에 입학한 것. 병역의무를 병특으로 마친 것. 뭐 그 정도다. 글쎄... 친구들도 몇 내 주변을 지키고 있긴하다. 허나,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 가슴이 시리도록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몇 번 있다. 허나 용기있게 열어보이고 부딪치지 않았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학생회장을 하고, 대학교에선 6년이나 동아리 생활을 했지만, 것도 어디까지나, 저멀리 희미한 도착점-사실은 나도 잘 모르는-을 변경시키거나 훼손시키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였던 것 같다. 물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온 몸을 바쳤던 적도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
내 도보여행에는 강원도 통일전망대라는 목표지점이 있다.
하루라도 더 빨리 거기에 가기 위해 최단거리, 최단시간만을 고집한다면, 끝나고 났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은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그 날뿐일거다. 좀 늦더라도 이마을 저마을, 이사람 저사람을 찬찬히 둘러보고 다닌다면 둘러본 마을들과 사람들이 여행전체의 기억을 꽉 채우는 소중한 보물들이 될거다.
목표는 확실히 정하되, 목표만이 아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나 빛나고 소중한 여행, 인생을 만들어가야겠다. 도보여행은 단 한번뿐이 아니겠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말이다.
좀 더 많은 사람과 일들과 얽히고 부딪히고 풀며 가야할 일이다. 도보여행 반, 인생 반을 넘기며 이제야 느끼고 짚고 가게되는 생각이다.


- 혼자라고 하면 미심쩍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해가 된다. 혼자 무슨 짓이람.
허나, 혼자 길을 가는 것의 미덕이 있다. 옆 사람의 상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둘셋만이 아닌 길 위의 모든 것들을 향해 열리는 개방성, 사색의 시간, 일정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여유있게 잘 살리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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