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황간. 그리고 대구

아홉째날(2003.07.02.수)

(이 날은 영동에서 황간까지 약 18km 정도를 걷고, 충동적으로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서 성당친구 부부 내외 집에서 머뭄. 민박값이나 대구 왔다갔다 하는 값이나... 하는 어설픈 계산도 한몫. 그 친구네 집에서 술을 푸느라 또 일기가 없음. 이 날도 역시 간간이 적어 놓은 메모만 옮기겠음. 정리하다보니, 이런 식으로 일기 빼먹은 날이 심심치 않음. 쩝. -.-;;)

- 격려 전화의 날이었음. 그제 무주의 PC 방에서 곳곳에 남겨놓은 여행 중 인사글을 사람들이 오늘 보기 시작한 모양. 수미누나, 양중형, 지훈형, 학준, 하영아 등등의 전화에 무슨 고시 합격이라도 한 양 어깨가 으쓱.

- 황간까지 오는 길은 쭉 기차길을 벗하며 오는 길. 어제 종결된 철도 노조의 파업을 생각함. 엊그제 TV 뉴스에서 나온 불편함을 불평하기만 하는 시민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삐죽.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확한 해설없이 현상에만 치중한 보도를 일삼는 언론에 대한 분노가 삐죽. '대의명분'이 과연 없었는가. 아니, 백번양보해 없었다고 쳐도, 그저 제몫 챙기기였을뿐이라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노동자들의 '제몫'은 누가 '챙겨'줄 것인가. 여러가지 혼란스런 문제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머리 속이 답답.

 

[노근리 쌍굴다리 위를 지나는 철길]

- 노근리를 지나오다. "Kill them all!" 한국전쟁의 전선은 남북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와 한반도 민중이었다던 선배의 말을 기억함. 어떤 식으로든 갚아드리겠다고, 아니 갚는 것이 나와 역사와 사회의 끊어졌던 연결을 복원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잠깐.

 

[노근리 쌍굴다리의 벽면]
흰테두리를 쳐 놓은 곳이 미군의 총탄자국. 현장 훼손방지를 위해 철망을 쳐 놓았다

 

[노근리 쌍굴다리 전면]

요새 이렇게 다시 만들어 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노근리 쌍굴다리는 한쪽을 사람과 차를 위해, 한쪽은 시냇물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다리였음.

- 학준에게 전화받고 생각해보니 내 도보코스 중 오늘이 대구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에 5시 55분발 기차타고 대구로 향함.
학준, 소연 부부의 환대 속에 소갈비로 저녁식사. 소주에 맥주에 간만에 목구멍의 때가 확 벗겨짐. ㅋㅋ

- 학부를 6년씩이나 걸려, 것도 매우 저조한 성적으로 졸업한 나의 파렴치한 행각에 대해, 그리고, 쥐뿔도 없는 주제에 대책없이 한달이나 유람을 다니고 있는 나의 이 만용에 대해 학준이는 늘 너그럽다. 아니, 너그럽다 못해 듣기 민망할 정도의 추켜세움까지 얹어 날 황송하게 만든다. 허나, 걘 나의 실체를 모른다. 내가 얼마나 불성실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을 너저분하게 이어가고 있는지 안다면 나에 대해 그런 말을 내뱉은 자기 입을 짓찧고 싶을게다. 하지만 어쩌랴. 그 너저분한 일상도 '나'이지만, 학준이도 나의 '일부'인 것을. 보답은 내 앞으로의 삶으로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