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국내

순창~강진

걷자웃자 2003. 6. 26. 21:20

셋째날(2003.06.26.목)

어제는 못다 걸었던 담양까지의 5km 구간을 되돌아가서 순창까지 약 24km를 걸었다. 준비할 때, 6시간 정도 일반 성인이 힘들이지 않고 걸으면 24km 정도 걷는다는 얘기를 듣고 좀 방심했던 것 같다. 어제 24km, 장난이 아니었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잠깐만 다리를 쉬어도 금방 다리근육에 알이 배겨 다시 걷기가 엄청 힘들다. 오늘은 대강 19km(순창-강진)을 걸었을 뿐인데 어제의 여파로 걷기가 너무 어려웠다. 어제 밤에 여관에서 족욕*을 하고, 물집에 실을 꽂아놓고, 맨소래담을 바르고 수선을 떨었어도 결국 오늘 별 소용이 없었다. 다리가 왕 아팠다.
(*족욕 : 일종의 간편 사우나로 뜨거운 물과 찬물을 각각 받아놓고 뜨거운 물에 3분, 찬물에 1분 정도 발을 교대로 담그는 것을 말함. 한 너덧번 이렇게 반복하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시원한 기분이 듬. 혈액순환을 촉진해 발과 온몸의 피로를 풀어준다나 뭐라나. 한비야의 여행기에서 배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엽기!! 신재민의 발 대공개]


둘째날 밤에 여관에서 찍은 내 발 사진. 자세히 보면 물집이 몇 군데 잡혀 있고,
바늘을 이용해 이 물집마다 구멍을 내고 실을 통과시켜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꼽아놓은 실을 타고 물집의 물이 빠져서 담날이면 멀쩡하게 걸을 수 있다.
보기엔 굉장히 끔찍해 보이지만 해보면 하나도 안아프고 재밌다. ^^
이것도 역시 한비야씨의 책에서 읽은 정보.
물집이 이렇게 한 4-5일간을 여기저기서 생겨서 고생하다가
이후 등산화로 신발을 바꾸고 나서 말끔히 없어졌다.


좀 더 겸손했어야 했다. 6시간? 우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6시간 도보도 충실히 하면 굉장히 힘든 시간이다. 10kg? 내 배낭 무게를 잘 모르겠지만,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24km? 매우 긴거리다. 한비야? 여자? 여자라고 우습게 봤었다. 허나 그 여자는 세계의 오지에서 살아 돌아온 여자이며, 나보다 훨씬 담대하고 열린 사람이었다. 국토종단도보를 무슨 산책쯤으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재를 넘으며 1. 백로]


서울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새 백로가 농촌에는 참새 만큼이나 많다.
처음 이 새를 봤을 때, 난 학인 줄 알았다. -.-;; 어찌나 무식한지...


식당이나 길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맨처음엔 그저 여행 중이라고 얘기했었다. '도보'로 '강원도'까지 가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보일 놀라움이나 '하릴없는 녀석' 따위의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고, 귀찮을것 같아이기도 했는데, 이제 그냥 강원도 간다고, 걷는 중이라고 비교적 수월하게 얘기한다. 얘기하고 나니, 걱정했던 것만큼 반응이 부담스럽지 않다. 외려 힘이 난다.
식당에서도 밥한공기쯤 더 나오는 건 예사고, 잠깐씩 들리는 농협 직원들도 먼저 알아보고 격려의 말을 보내고, 길가 아주머니들도 제 자식이 길 떠난양 걱정해 주신다. 힘이 난다. 역시, 먼저 솔직하게 내보이면 생각지 않았던 힘을 받는 때가 있다. 반대일 경우도 있긴 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것은 일종의 우월감이다. 상대로부터 흠잡히고 비판받을 가능성을 원천봉쇄해버리는 아집이며 정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재를 넘으며 2. 들꽃]


여행 내내,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눈을 즐겁게 해주던 들꽃이다.
정말 우리나라 곳곳에 안핀 곳이 없는 흔한 꽃인데 이름을 몰랐다.
서울 와서 꽃 이름이 뭔지 찾아봤는데, 역시 모르겠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꽃들이 참 많은데, 꼭같이 생긴 건 도저히 못찾겠다.
그래도 '개망초'라는 이름의 꽃이 그나마 젤 비슷하게 생겼고,
이름의 그 소탈함이 지천에 널린 이 꽃과 어울리는 것 같아 그냥 개망초로 부르기로 했다.
아시는 분 있으시면 교정 좀 해주세요.


근데, 아직 입이 안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학생'이냐는 말에 그냥 '예' 해버린다. '나이는 서른이고 현재 백숩니다'라고 얘기하는 것, 잘 안된다. 물론 숙박비를 깎을 때는 효과를 발휘하는 거짓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학생이라고 말해버린다. 나이 서른씩이나 되서 직장도 없이 이러고 다니는 게 창피한가보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러지 말자. 그냥 얼마전에 직장 그만두고 왔다고 하자. 중죄를 지고 쫓겨다니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게 뭐있나. 이것마저 솔직해지면 길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으다. 꽁꽁 사맨 나를 풀어헤치고, 한껏 열린 자세로 여행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하자.


'여행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안~안천면  (0) 2003.06.29
임실~진안  (0) 2003.06.28
강진~임실  (0) 2003.06.27
담양-순창간 가로수 터널을 지나  (0) 2003.06.25
광주 망월동~담양 5km 남겨두고  (0) 2003.06.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