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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백

걷자웃자 2005. 10. 19. 23:33

한 달 전쯤에 무려 7만원여의 거금을 들여 자전거를 한 대 샀다.
그런데, 산 첫날, 바로 잃어버렸다. --*
전철역 옆의 자전거 보관소에 자물쇠까지 채워 묶어놓고 약속이 있어 종로에 갔다 왔는데,
그 새 누군가 체인을 끊고 가져간 모양이다.

 

너무나 황당해하고 있는 중에,
내 자전거를 묶어 놓았던 곳 근처에 다른 자전거가 체인에 묶여있지도 않은채로 '놓여져' 있는 걸 봤다. 난 그걸 보고,
'아, 새 자전거가 탐난 어느 넘이 자신의 자전거를 놓아두고 내 껄 훔쳐갔구나'라고 해석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타고 내 방으로 가져왔다.
또 누가 훔쳐갈까봐 내 비좁은 방 안에 자전거를 들여놓기까지 했다. --;;

 

담날 아침에 일어나 현관과 화장실 입구 사이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자전거를 보며,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던 전날 밤의 내 판단이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난 곧, 종로에서 마신 술 탓을 하며, 그런 치기어린 행동을 한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 이후, 그 자전거는 내 죄의식의 상징인양 화장실 입구와 현관 한 귀퉁이를 가로막고 나의 원활한 이동을 방해했고,
난 그걸 볼 때마다, 잃어버린 새 자전거에 대한 아쉬움, 남의 자전거를 가져왔다는데 대한 죄의식, 어른답지 않았던 내 판단에 대한 자책감 등등 때문에 쉰 김밥 먹는 것 마냥 깨림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 이제 어쩔 수 있겠냐고 생각해버리기 일수였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잘 타고나 다니자는 마음에서
어느 날엔가에는 그 자전거를 몰고 집 옆의 공원을 몇 바퀴 돌아보기도 했으나,
이 자전거의 주인과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제, 회사에서 생일선물로 화장실 앞에 까는 발매트를 받았다.
집에와서 선물받은 발매트를 깔려니, 자전거가 걸리적 거렸다.
이 참에, 자전거를 되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어둠을 틈타, 다시 그 전철역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원래 있던 모냥대로 갔다 놨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가벼웠다. 진작에 이럴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죄책감이 아니라, 발매트 깔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갔다 놓은 것에 대해,
좀 부끄러웠다. 하지만, 많이가 아니라, 조금 부끄러웠다.


내 죄의식 감지장치가 조금 고장난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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